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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감

  • 작성자 : Peter
  • 조회 : 154
  • 24-06-28 17:47

건너감


독자여, 이  ‘건너감’이라는 뜻에서 죽음의 개념을 보다 넓혀 이야기 하는 것을 묵인하시라 !

매일 매시간, 아니 우리의 정신적, 신체적 존재의 매순간에 일어나는 죽음 말이다.

죽음이라면 우리가 숨을 거두는 순간, 지상의 존재가 말살되는 순간을 생각하는 것이 항례다.

그러나 죽음의 현실은 훨씬 심각하고 보편적인 것이다. 내 생각에 죽음은 마지막 날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나고  매일의 삶에서 일어난다. 존재의 매순간은 죽음이라는 서글픈 현실을 안고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모티브를 간직하고 있다. 진정한 파열의 모티브를 간직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 숨겨져 있듯이, 죽음이라는 서글픈 현실과 파열적인 부활의

모티브가 우리 삶에 나란히 깃들어 있다.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고후4:10

이 두 현실이 일으키는 갈등 속에서  하늘 나라로 건너감이 이뤄진다. 예수님은 이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눅17:21) 고 하셨다.  이 나라는 자라고 커지며 마지막 때에 완성을 볼것이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중간에는 죽음이라는 통로가 있다. 인간의 본성과  하나님의 본성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경계가 있다. 거기서 선을 향하던 온갖 소망들이 결실을 맺고, 모든 희생이 보람을 낳고,참 사랑의 행실들이 인정을 받아 드디어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 생 과 사 의 양면성 !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날인을 받고 해명을 받으며,

그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충만해지고,하늘나라의 한 단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양면성

이야말로 우리를 괴롭혀온 ‘왜?’ 라는 의문들을 푸는 열쇠이자, 인간의 마음에 이는 모든 모순에

대한 바른 해답이다.

죽음과 삶을 하나로 본다면, 특히 그것들이 상극으로 나타날 때의 죽음과 삶은 만물의 생성,창조계의 끝없는 진화,생명계의 비약적 변화, 창세기의 저 찬란한 날들, 하나님 편에서 당신 아들을 만드시고 그에게 당신 사랑의 경험을 물려주시는 과정등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을 밝혀주는 열쇠이다.

현세의 죽음은 곧 출생의 순간이다. 우리 안에 있는 산적 생명이라는 고귀한  생명이 출생하는

순간이다. 현세의 죽음은 우리가 사물과 역사의 자궁에서 서서히 밀려나가는 것이다.

출생의 어두운 통로가 끝나는 저편에는 하늘 나라의 안온함,하나님과의 온전한 친교가 우리를기다린다.

 세상이 하늘의 표징이다. 하늘이 세상의 표징이 아니라는 뜻이다.

태양이 그리스도의 표징이지 그리스도가 태양의 표징은 아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표지요,메아리이며 상징이다.

모든 것이,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중요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나타내는 표징이다.

앞으로 올 것은 온 것보다 값지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것은 장차 갖게 될 것의 표징이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가 태아보다 낫고, 성숙한 어른스러움이 미숙하고 유치한것보다 낫듯이, 장차 갖게 될 것이 지금 것보다 월등히 낫다.

그렇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다. 나도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애서 이 신념을 얻었다.

사랑은 전진한다. 후퇴하지 않는다.

사랑은 창조한다. 파괴하지 않는다.

사랑은 살아 남는다.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

인생을 통찰하는 사이에 나는 모든것이 신적 생명의 표징이라고, 그리스도께서 내게 전해주셨고

나날이 내 안에 가득 채워지는 그 생명의 표징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어버이는 하늘 나라에서 내가 모실 다른 어버이의 표징이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자라던 집,

지금은 태풍에 쓰러져 간 데 없는 그 집은 결코 부서지지 않을 다른 집의 표징이다. 함께 자라온

오누이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함께 살 게 될 형제자매들의 표징이다.

나를 살 찌우는 음식과 나를 덥혀주는 불과 내가 즐겨 놀던 뒷동산은 하늘 나라에서 내가 먹을 음식이요,나를 따뜻이 해주는 불이며,내가 뛰놀 뒷동산의  상징이다. 내가 참석하는 이 모임,

하나님을 받아모시는 그 성찬식의 생생한 표징이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표징이라는 생각…. 아름답지 아니한가 ? 보이지 않는 그 세상으로

나는 서서히 잠겨들고 있다. 믿음은 그 세상을 발견케 해주고, 행여 잊을세라 자꾸 되살려주며,사랑은 그 세상을 얻게 해준다.


모든 것이 표징이다.

그러나 표징과 그 뒤에 숨은 표징을 자꾸만 오르다 보면 우리는 낙원에 이를 것이니…

사랑이라, 집이라 하는 것은 곧 낙원의 표징인 까닭이다.

사랑하며 사는 집이 낙원이다. 그것을 하늘이라고도 하고 하늘나라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똑같은것이다.    “아버지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 C.카레토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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